초강대국 미국이 2~3년마다 '부도 위기' 겪는 이유

입력 2023-05-29 17:47   수정 2023-05-30 00:08

미국 정부가 빚을 못 갚아 부도를 낸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중남미나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국가 부도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미 국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한국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급등했다. 백악관과 야당인 공화당이 부채 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위기가 해소되는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미국은 거의 2~3년에 한 번 비슷한 일을 겪는다.

미국만이 겪는 문제
미국이 부도 위험에 처했다고 해서 미국 경제가 큰 불황에 빠졌거나 미국의 국력이 갑자기 약해진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 법률이 정한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다. 현재 이 한도는 31조3810억달러다. 미국 국가부채는 이미 지난 1월 이 수준에 도달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추가로 빚을 내지 못하고 남은 현금을 털어 쓰거나 일부 공공 지출을 유예하며 버텼다. 이런 비상조치마저 한계에 다다르면 미국은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의 차환 발행을 하지 못해 디폴트를 맞게 된다.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시한으로 재닛 옐런 재무장관(사진)이 제시한 날짜는 6월 5일이다.

미국 부채 한도의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까지 미국은 정부가 돈을 빌리려면 건건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했다.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전쟁 중에 필요한 돈을 일일이 의회 승인을 받아서 쓰기엔 너무 번거로웠다. 그래서 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빚을 낼 수 있도록 하되 일정한 제약을 뒀다. 그것이 부채 한도다.

부채 한도는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특이한 제도다. 덴마크에 이런 제도가 있지만 부채 상한이 국가부채의 7배에 달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주는 2007년 부채 한도를 도입했다가 2013년 폐지했다. 그 외에 GDP 대비 재정적자나 국가부채 비율을 법으로 정한 나라는 있지만, 차입 규모 자체를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대원군은 당백전, 바이든은 당조전?
애초에 부채 한도를 정한 취지는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막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00여 년간 미국은 부채 한도를 계속 높여 가며 국가부채를 늘려 왔다. 1960년 이후로만 78차례 상향 조정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한도 비율도 초기에는 50% 안팎이었으나 지금은 120%가 넘는다.

최근에는 부채 한도 상향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고 그 때문에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부채는 늘어나는데 한도가 제때 조정되지 않으면서 디폴트 위험이 제기되고, 그 영향이 주식·채권 시장에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이고, 상·하원 의회 중 한 곳 이상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일 때 대립이 더 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부채 한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거론되는 해결책 중 하나가 1조달러 백금 동전이다. 미국 정부가 액면가 1조달러 동전을 찍어 미 중앙은행(Fed)에 예치하고 그 대가로 1조달러를 받아 쓰자는 것이다. ‘당백전’이 아니라 ‘당조전’이다. 이 아이디어는 흥선대원군의 당백전이 그랬듯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어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이 부도 나면 달러를 사라?
미국은 지금까지 한 번도 디폴트에 빠진 적이 없다는 것이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치르던 1814년 국채 부도를 낸 일이 있다. 1979년에도 1억달러가 조금 넘는 국채를 제때 갚지 못했다. 다만 당시 디폴트는 행정 착오가 겹친 것이어서 파장이 크지는 않았다.

이후 미국 디폴트 우려가 가장 심각하게 제기된 때는 2011년이었다. 그해 8월 부채 한도 조정이 늦어지자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그 아래인 AA+로 낮췄다. 사상 초유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 주요국 주가가 급락했다.

하지만 달러 가치와 미 국채 가격은 상승(금리 하락)했다. 미국 경제가 흔들리자 투자자 사이에 리스크 회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오히려 달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미국이 일시적으로라도 디폴트에 빠진다면 그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위기에 빠지는 것만큼 세계 경제에 큰 리스크 요인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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